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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엘캐피탄 노즈등반기
작성자 박종관 작성일 2008-06-26 오후 5:53:38 조회수 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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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물안개와 차가운 공기를 뒤로하고 엘캐피탄(El capitan) 바위로 다가가고 있었다. 주위는 아직 어둡고 헤드랜턴 불빛만 어둠을 가르며 엘캡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이틀 전 깔아놓은 고정로프는 직선으로 뻗어내려 끝줄 몇 미터만이 돌 위에 똬리를 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낭을 벗고 적당한 돌을 골라 앉아 담배를 꺼내 물어본다. 긴장을 털어내려고 하얀 연기를 폐부 깊숙이 집어넣는다.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고정로프에 주마를 걸었다.

이제 시작이다. 3박 4일. 물 20리터 누룽지 빵 조금, 과일 캔 조금, 크립바 조금, 그 이상 등반이 길어지면 위험할 수 있다. 홀링백도 1개로 줄였다. 네 동의 고정로프를 올라서니 추위가 가시고 이마에 땀이 맺는다. 유춘열 대원과 장재창 대원이 모두 올라오니 여명이 밝아온다. 이제 4마디(Sickle Ledge)에 올라섰다.

아침 6시가 되자 바위가 시야에 들어온다. 등반을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퍽’ 하고 큰소리가 들린다. 위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엘캡 정상에서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 소리는 패러글라이딩을 탄 클라이머들이 엘캡 정상에서 바람이 없는 고요한 아침을 이용해 엘캡 메도우에 사뿐히 내려앉는 것이었다.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욕도 나왔다.

‘그래, 우리도 올라가자’

5. 6마디는 한번에 길게 끊었다. 난이도 5.9크랙인데 거의 걸어갈 정도로 쉬웠기에 힘들이지 않고 60미터를 딱 맞게 소비하며 올랐다. 출발이 좋다. 유대원이 두 번째, 장대원이 마지막. 우리는 이 시스템을 끝까지 가져갔다. 등반 중 누구하나 자신의 포지션을 바꾸고 싶었을지 모르나 끝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7. 8마디는 우측으로 나가는 크랙인데 두 마디 모두 크게 펜듈럼(Pendulum)해서 나간다. 40미터씩 두 마디를 끝내니 좌측에 볼트가 있다. 난 그때부터 볼트가 좋아졌다. 머리 위로 볼트가 보이면 엔돌핀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세 남자, 엘캡피탄 ‘노즈’에 도전장

‘사실 크랙이야 그다지 어려울 게 없지만 자칫 위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9~11마디도 똑같은 크랙으로 계속 이어진다. 11마디를 끝내고 레지를 보았다. 이곳이 돌트 타워(Dolt Tower)다. 오늘 자야 할 비박지인데 그리 잠자리가 좋지 못할 거 같다. 여기저기 돌무더기가 있고 레지가 경사가 져서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없다. 딱딱한 베이글 빵으로 허기를 달래자니 여간 고통이 아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내일은 20마디까지 가야 비박을 할 수 있다. 장대원과 나는 돌무더기 사이에 끼어 들어가 억지로 자리를 만들고 유대원은 벨트를 찬 상태로 조금 아래 흐르는 바위 턱에 앉아 비박했다. 침낭에 들어가니 진눈개비가 내린다. 밤새 내리지 않기만 바라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떴다. 하늘엔 별들이 반짝였다.

‘그래 더 올라갈 수 있겠구나!’

우리는 자동으로 동이 트기 전에 식사를 하고 장비를 차고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처럼 바위가 시야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12마디는 시작이 돌트 타워에서 우측으로 로프 하강하여 크랙을 다시 올라야만 했다. 난 조금이나마 시간을 아낄 겸 아직 어두웠지만 하강했다. 확보를 봐 줄 유대원도 내려와서 등반준비가 완료됐다.

성격이 급한 내가 랜턴을 켜고 등반을 시작했지만 얼마 안 가서 동은 트고 바위가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날도 나는 하루 종일 캠을 설치하고 오르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셋은 마치 공장의 숙련된 노동자들처럼 등반에 몰두되어 기계처럼 움직였다. 어느 한 개의 실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숙련 노동자처럼 등반에 몰두

해가 지기 전에 20마디에 무사히 도착했다. 아침부터 일찍 서두른 대가였다. 20마디는 Camp IV라 불리지만 겨우 두 명 정도밖에 비박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나마 넓은 곳에 몸집이 큰 유대원과 장대원이 앉아서 자고, 난 바로 위 작고 경사진 테라스에 의자를 걸고 겨우 잠자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11월 4일 아침이다. 밤새 어찌나 다리가 저리던지 잘 잤냐고 두 사람에게 물으니 대답은 역시 투덜투덜, 나보다 더 고생했나보다. 오늘은 두 곳(24. 26P)에 비박지가 있어서 좀 여유를 부린다. 엘캡 메도우 건너 미들캐시드럴(Middle Cathedral) 능선이 눈 아래로 보인다. 이제 제법 올라온 모양이다.

밤새 요세미티 밸리에 하얀 물안개를 흠뻑 토하며 고요히 흐르는 머세드강(Merced River)은 보면 볼수록 정겹다. 21마디가 끝나가고 22마디 대천정에 다다랐다. 사진도 찍고 한껏 여유를 부린다. 개념도를 보니 5.13+다. 가는 크랙이 루프를 타고 우측으로 넘어간다. 이걸 프리로 한다.

‘이거지? 잡고 갔겠지?’

난 혼잣말로 그들을 놀려댔다. 크랙은 너트와 하켄 등 고정 확보물이 몇 미터 간격으로 널브러져 있을 뿐 아기 손가락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가늘어 보였다. 초크 자국도 없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아니 믿고 싶지도 않았다. 계속 등반은 이어졌다. 중도에 침니도, 어쩌다 프리클라이밍도 열심히 노동한 대가로 26마디(Camp VI) 비박지에 다다랐다. 레지가 어제보단 좀 넓고 좋은데 무슨 냄새가 심하다. 그곳은 클라이머들의 공중 화장실이었다.

‘잘 곳이 없는데 어떡하랴’

지독한 냄새를 참으며 누룽지도 끓여먹고 커피도 마시고 한껏 여유를 부린다. 이곳은 지난해 10월, 요세미티 폭설로 인해 일본 클라이머 2명이 침낭 속에서 동사한 곳이기도 하다. 멀리 요세미티 터널 쪽으로는 주말이라 사람들을 실은 자동차 불빛이 끊임없이 요세미티 벨리로 들어온다. 분명 저 속에 남가주산악회 형님들도 계실 것이다.



지난해 일본 클라이머 폭설로 동사한 Camp VI

‘내일이면 같이 맥주를 마실 수 있겠구나!’

밤하늘에 별들은 더 빛을 발한다. 내일도 날씨가 좋을 모양이다. 어김없이 동은 트고 또 출발. 이제 조금만 참아보자.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한없이 즐거웠다. 29마디까지 마치고 셋이 다 모였다. 30마디는 너무 짧았다. 그래서 한번에 31마디 정상에 가기로 했다. 마지막 마디는 볼트길이라서 가다가 로프가 모자라면 중도에 멈출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마침내 바위가 점점 눕더니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소나무가 나타난다. 쌍 볼트에 확보하고 완료! 계산은 적중했다. 정확히 60미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상에 섰다. 시간은 12시, 서둘러 홀링하는 도중에 유대원이 올라오고 장대원도 올라온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이 기분이었을까?’

적어도 그 순간만큼 엘캡 정상은 신대륙임이 분명했다. 서로 포옹하며 수고했다는 격려도 하고 때론 감정이 북받쳐 괴성도 지르고 세 남자는 너무 행복했다. 밑에서 지켜보는 대장과 최종하 대원이 우리 걱정을 많이 했으리라.

무전기로 정상 도착을 알리고 1시간 후에 내려가기로 했다. 푸른 창공에 따스한 햇살 사이로 멀리보이는 하프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중력에서 해방된 우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강 코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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