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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알프스이야기6부
작성자 박종관 작성일 2006-08-23 오후 5:51:37 조회수 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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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장엄한 마테호른의 매력에 이끌려..."



2006년 7월 11일 우리팀은 오전 8시경에 샤모니 시내 기차역에 도착하여 스위스 Zermatt 이라는 마을로 향하는 기차표를 끊었다.  왕복으로 일인당 105 유로 (134 달러) 였고 Zermatt 까지 기차를 두번 갈아 타야 한다고 한다.  오전 8시 40분에 오는 첫 기차에 우리팀 4명 모두 들뜬 마음으로 몸과 베낭을 싣는다.  시간상 마테호른 정상등반은 포기하고 Zermatt 마을 관광과 Matterhorn Trail 하이킹만 계획하였기에 빙벽화, Harness, Helmet, 그리고 로프등의 등반장비를 알펜로제 숙소에 다 빼놓고 왔다.  하여튼 덕분에 베낭 무게는 가벼워 활동하기에 좋았다.  프렌치 알프스 산간지대를 달려 스위스 국경을 넘어 Martigny 라는 마을에 도착 여기서 다른 기차로 갈아타자 갑자기 스위스 경찰 두명이 들어와 박종관 대원님과 안재호 대원님의 여권을 보자고 한다.  수염이 덮수룩하고 3일동안 제대로 음식을 드시지 못하여 얼굴이 많이 여윈 안재호 대원님과 얼굴 중앙 부위만 새까맣게 탄 박종관 대원님의 여권만 자세히 살피고 다른 사람들의 신분증이나 여권따위는 신경도 안쓰는것 같았다.  스위스 경찰의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 Visp 이라는 마을에 다시 내려 두번째이자 마지막인 기차를 타고 Zermatt 으로 향했다.  두번째 갈아탄 기차 내부의 좌석이 엄청 넓고 편했고 주위를 돌아보니 동승한 사람들이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잠시후 기차표를 검사하러온 직원이 지금 타고 있는 기차칸은 일등석 이니 한사람당 10 유로 (13 달러)를 더 내라고 한다.  우리팀이 샤모니에서 구입한 기차표는 일반석이었는데 일등석 기차칸을 분별못하고 그냥 타버린 것이다.  덕분에 편안한 자세로 우리팀의 목적지 Zermatt 마을에 총 5시간 반 걸려 도착하였다.  Zermatt 기차역에서 내리자 버스나 택시등은 보이질 않고 말이나 전기로 움직이는 마차들이 오고 간다.  얼핏 보면 친환경 무공해주의를 내세워 이러한 원시 교통수단을 마련한것 같아 보였으나 이 역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켓팅 전략인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러 가까운 맥도날드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니 샤모니 맥도날드 식당의 가격표보다 더 비싸다.  숙박지와 케이블카 역으로 이어지는 중앙 골목 양쪽으로 온통 마테호른 사진이 박힌 엽서, 자석, 옷가지, 그리고 Key Chain 등의 기념품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주변 건물들도 기차를 타며 지나온 평범한 스위스 마을의 건축양식과 다르게 눈에 잘 띄는 색상과 화려한 꽃들로 장식되어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시선을 집중 시킨다.  이곳 역시 샤모니와 마찬가지로 관광객 대다수가 일본인들이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은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공원을 지나치면서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얼뜻 보니 아예 일본 어느 시에서 이곳 Zermatt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은듯 하였다.  기념비 아래에 씌여진 글들을 자세히 읽어보니 일본에서 엄청난 자금을 이곳 스위스 산악마을의 발전에 쏟아 부은듯 하였다.  
여전히 컨디션이 안 좋으신 안재호 대원님이 편히 쉴곳을 찾아 달라고 하여 Hotel Monte Rosa 라는 고급호텔에 들러 하루 120 유로 (153 달러)를 지불하고 2일동안 Twin Bed 룸을 사용케 하고 이현수 대원님, 박종관 대원님, 그리고 필자는 마테호른 트레일이 시작되는 Schwarzsee (2582 m) 라는 곳까지 올라가기 위해 케이블카 역으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Schwarzsee 에 내리자 드넓은 알파인 초원지대 사이로 등산길이 윗쪽 언덕으로 이어져 있었다.  한쪽 푯말에는 Matterhorn Trail 라고 씌여져 있었다.  푸른 알파인 지대의 언덕 너머로 삼각 피라미드형의 독립봉이 정상부근에 걸친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장엄하게 우뚝 서있었다.  히말라야의 K2, 남미의 Alpamayo 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손꼽히는 Matterhorn (4478 m) 이었다.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만발한 푸르른 알파인 초원지대와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 그리고 사방으로 펼쳐진 빙하와 스위스 알프스 산군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은 가히 글로 표현하기에 역부족인것을 느낀다.  
마테호른은 그 자체에서 뿜어내는 형용할수 없는 매력으로 우리팀의 몸과 마음 그리고 시선까지 끌어 당긴다.  마테호른 트레일을 2시간여 힘들게 오르자 Hornli 산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L.A. 근교에 위치한 Mt. Baldy (10,000 ft) 정상높이에 건축한 이 산장은 총 3층건물로 1층은 식당과 요리실로 사용되고 2층과 3층은 간이침대가 놓인 숙박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저물어져 가는 해를 뒤로하고 이곳 식당에서 간단한 음료수와 저녁을 주문하여 맛있게 먹는 동안 우리팀은 약속이나 한듯 산행계획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원래의 계획은 이곳까지 하이킹을 끝내고 하룻밤 Hornli 산장에서 잠을 청하고 다음날 다시 Zermatt 으로 내려가려고 하였으나 바로 코앞에 보이는 웅장한 마테호른의 가파른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당연히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이곳까지 하이킹 목적으로 올라왔기에 마테호른의 가파른 바위 능선길을 등반하기에 필요한 로프, 헬멧, Harness, 등산화 등을 전부 샤모니 알펜로제 숙소에 두고 왔었다.  얇은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필자는 마테호른 등반을 하려면 새벽에 출발하여야 한다는 소리에 발가락 동상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박종관 대원님은 쓰레기 비닐봉지를 어디서 구해와 양발을 비닐로 감싸 동여맨후 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신는 Know How 를 보여준다.  
그날 밤10시경 Hornli 산장 숙소로 올라가 다음날 새벽4시에 출발하기로 약속하고 눈을 감으려 하니 별이 빛나는 밤하늘 위로 밝은 보름달이 산장 숙소 창문사이로 훤히 비추며 단잠을 설치게 하였다.  다음날 새벽 3시경이 되자 주위의 등반인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 등반준비를 하며 부스럭 거린다.  우리팀도 잠결에 일어나 등반에 필요한 음식과 물 그리고 옷가지를 베낭에 챙기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이현수 대원님이 우모복이 없어졌다고 이리 저리 찾아 다닌다.  우모복 없이 자켓만 입고 새벽등반길에 나서다 얼어 죽으면 안되겠다 싶어 마테호른 등반 공격조를 박종관 대원님과 필자만으로 재편성한다.  등반준비를 마치고 산장 밖으로 나와 라면을 끊여 아침식사를 하고 이현수 대원님의 배웅을 뒤로하고 앞서가는 가이드 등반팀의 뒤를 바싹 따라 붙으며 어둠속을 걷기 시작하였다.  밝은 보름달이 마테호른 위로 비추고 있어 헤드램프를 약하게 해도 주변의 식별이 가능하였다.  어제 저녁부터 엉성한 양말과 신발때문에 염려하였던 기온도 최저 섭씨 38도 정도로 견딜만 하였다.  헤드램프의 불빛을 따라 짧은 눈길을 지나니 갑자기 시꺼먼 암벽구간이 가로막고 서있었다.  Hornli 능선길의 시작부근이었다.  얼핏보니 5.5 급의 암벽구간인데 굵은 동아줄로 만든 고정로프가 설치되어져 있었다.  고정로프를 잡고 암벽구간을 올라서니 3rd Class 바윗길이 나오며 이 구간을 한참 올라가니 바위능선길이 고정로프와 함께 쭉 깔려 있었다.
마테호른 Hornli 능선길의 바위들은 매우 불안정하게 놓여져 있어 등반인들의 조그만 부주의로 대형 낙석사고로 이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필자의 현장 체험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팀 바로 앞으로 올라가고 있는 가이드 팀중의 한사람이 불안정하게 놓여진 바위조각들을 드디어 아래로 추락시키고 만다.  우르릉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위쪽을 쳐다보니 필자가 오르고 있는 등반라인을 따라 부서진 돌들이 돌진해 온다.  헬멧도 안쓴 낙석에 완전 노출된 상태에서 반사적으로 낙석들을 이리 저리 피하며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을 보존하려고 애쓴다.  이건 등반이 아니라 Indiana Johnes 영화에나 나올법한 황당한 모험이라고 애써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린후 한국인의 무모한 정신력과 오기를 서양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곳에서 포기하지 않고 마테호른 정상을 향해 올랐다.  등반을 시작한지 3시간이 지나 Solvay 산장 (4000 m) 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마테호른 정상공격 캠프와 하산 도중 응급상황시 잠시 머물수 있는 임시 숙소로 사용할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 산장에서 마테호른 정상까지 약 478 m 의 높이를 더 올라야 한다.  고도로 인한 가쁜 심호흡을 가다듬고 앞으로 올라 가야할 등반루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정상까지 5.3 에서 5.5 급 정도의 암벽구간이 계속되어 진다.  앞서 가는 가이드팀의 선등자가 드문 드문 설치되어져 있는 볼트에 Quickdraw 를 걸고 로프를 통과시키며 오르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등반 의욕이 떨어져 버린다.  설상 Free Solo 로 기나긴 암벽구간을 무사히 통과하여 정상에 도착한다고 가정해 보자.  1200 m 의 가파른 바위 능선길을 오르며 지칠대로 지친 다리로 다시 1200 m 의 아찔한 바위 능선길을 로프없이 미끄러운 운동화를 신은채 Down Climbing 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였다.  박종관 대원님과 필자는 여기 Solvay 산장이 우리팀이 현실적으로 오를수 있었던 최고점이라는 의견에 동의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우리팀이 올랐던 바윗길을 더듬으며 하산을 하였다.  하산도중 몇번이나 길을 잘못들어 애를 먹다가 드디어 새벽녘에 올랐던 굵은 동아줄 고정로프가 놓인 암벽구간을 내려서자 반가운 Hornli 산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양다리가 후둘거리며 각자 노는것을 보자 Solvay 산장에서 기꺼이 후퇴한것이 정말 대견스러웠다.  
Hornli 산장 야외 식탁에서 마테호른 능선길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계시는 이현수 대원님을 만나 안재호 대원님이 투숙하시고 계신 Monte Rosa 호텔로 내려갈 준비를 하였다.  잠시 후 대형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마테호른 Hornli 상단부 능선길 바로 왼쪽부근에서 시작된 낙석들이 아래로 떨어지며 엄청난 굉음과 뭉게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Solvay 산장에서 교만한 필자의 마음을 바꾸어 대형 낙석이 떨어지기전 안전한 Hornli 산장까지 무사히 하산할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다시 한번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케이블카를 타고 Zermatt 마을로 내려와 안재호 대원님이 계시는 Monte Rosa 호텔로 들어간 우리팀은 또 한번 기절하였다.  몸 상태가 안좋아 이틀동안 호텔 침상에서 누워만 계실줄 알았던 안재호 대원님이 본인도 오늘 오전 마테호른 정상을 갔다며 디지탈 카메라로 촬영한 눈으로 덮힌 정상부위 철 십자가 사진을 보여주었다.  심심하여 Zermatt 시내를 걷다 우연히 헬기로 마테호른 정상을 한바퀴 돌며 구경시켜준다는 곳을 찾아가 220 유로 (282 달러) 를 내고 마테호른 정상부근을 두번씩이나 돌며 실컷 구경하였다고 한다.  박종관 대원님이 깜짝 놀래며 말한다.  "우리가 못 올라간 마테호른 정상을 재호 형님이 먼저 올랐으니 우리 모두 깨~갱~ (자기보다 한수 위인 사람을 존경하며 표현하는 박종관 대원님의 애칭 미사 언어) 입니다."  우리팀 모두 안재호 대원님의 마테호른 최단시간 정상 등정을 축하하며 샤워와 통닭구이 점심을 마치고 깊은잠에 빠진다.  
7월 13일 목요일 아침 우리팀은 Monte Rosa 호텔을 빠져나와 샤모니로 향하는 기차역으로 이동하면서 우연히 어떤이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앞을 지나친다.  동판에 새겨진 이름을 보니 Whymper 라고 새겨져 있었다.  바로 1865년 7월14일 영국의 Edward Whymper 경외 6명의 산악인들이 우리팀이 올랐던 Hornli 능선길을 따라 마테호른 정상에 최초로 오른후 하산하면서 실족사고로 같은 로프에 묶여 있었던 4명이 추락사 하는 비운의 사건이 벌어졌었다.  기념 사진촬영을 마치고 기억에 오래남을 장엄한 마테호른봉과 아름다운 Zermatt 마을의 모습을 뒤로 하고 프랑스 샤모니 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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